영웅시대
남극탐험사에서는 사람이 남극대륙에 처음 상륙한 1895년부터 1922년까지를 ‘영웅 시대’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어려운 조건 속에서 생명을 내어놓고 남극을 탐험했다는 뜻이다. 남극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물론 해도나 지도 한 장 없고 무전기나 위치 측정장치 같은 현대장비 하나도 없이 오로지 남극을 탐험하겠다는 숭고한 의지와 위대한 사명감만으로 남극을 탐험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초기 단계 망원경과 경도와 위도 측정장치, 그리고 나무로 만든 고래잡이 배나 물개잡이 배가 전부였다.
한편 1895년 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주로 물개잡이나 해군이 남극을 일주항해하거나 멀리에서 남극대륙을 바라보았을 뿐이었고 해안에 상륙했다 하더라도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상태에서도 남극 탐험에 나선 이가 있었다. 1895년 벨기에 해군장교 아드리엔 드 겔라쉬(Adrien de Gerlache, 1866-1934)가 바로 그 사람이다. 겔라쉬가 이끈 여러 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탐험대는 1898년 3월 벨링스하우젠 해에서 남극의 얼음에 갇혀 얼음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갔다. 남극에서 겨울을 보낸 후 마침내 열 석달 만인 1899년 3월 탐험선이 얼음 속에서 나왔다. 남극해에서 처음 월동한 그 탐험에서, 사관 에밀 당코와 선원 칼 윙케가 각각 질병과 사고로 죽었다. 남극반도 서쪽에는 그들을 추모해, 각각 그들의 이름이 붙여진 해안과 섬이 있다. 그 탐험대에는 아문젠(Roald Amundsen, 1872-1928)이 보수 없이 참여해 훗날 남극점 정복을 위한 경험을 쌓았다.
아문젠과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1912)이 1911~1912년 남극점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일은 남극탐험사상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개를 알고 에스키모와 살면서 그들에게서 극지에서 사는 방법을 배웠던 아문젠이 극점에 먼저 도달했고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준비가 소홀했던 스콧팀은 날씨마저 나빠 모두가 조난 당했다. 스콧과 함께 월동했던 세 사람이 한겨울에 황제펭귄 알을 수집했던 ‘지상 최악의 여행’은 이름 그대로 그들의 탐험이 하도 고생스러워 지금도 남극탐험의 가장 위대한 탐험기록 가운데 하나로 인정된다.
같은 해인 1912년 1월 일본의 육군대위 시라세(Nobu Shirase, 1861-1946)는 로스 빙붕에 상륙하여 내륙으로 257km를 탐험하였다.
영국출신 오스트레일리아 지질학자인 더글러스 모슨(Sir Douglas Mawson, 1882-1958) 경은 동료 두 사람과 함께 1912년 11월 동남극 조지 5세 랜드를 탐험했다. 12월 중순 기지에서 506km 떨어진 곳에서 동료 한명과 식량을 실은 썰매가 크레바스에 빠져 사라지면서 남은 두 사람은 생존위기에 몰렸다. 두 사람이 기지로 돌아오던 중 나머지 한 명의 동료도 죽고 혼자 남은 모슨은 천신만고 끝에 160km를 살아 돌아와 남극 탐험사상 전무후무한 단독생존의 신화를 만들었다.
남극점이 정복된 후 남극을 종단하려던 어니스트 섀클튼(Sir Earnest Henry Shackleton, 1874-1922) 경의 탐험선 ‘엔듀어런스’호가 1915년 1월 웨델 해 코츠랜드 앞에서 얼음에 갇혀 얼음과 함께 떠다니다가 11월 21일 침몰했다. 그전 10월 27일 얼음위로 내려온 28명의 사람들은 북쪽으로 떠가면서 얼음이 위험해지자 웨델 해에 작은 보트 두 척을 띄웠다. 그들은 1916년 4월 14일 마침내 남쉐틀랜드 군도의 북서쪽에 있는 엘리펀트 섬에 상륙했다. 섀클튼은 24일 부활절인 월요일 5명의 동료와 함께 작은 돛단배 ‘제임스 캐어드’호로 남빙양 1,300km를 항해한 다음 5월 10일 높이가 2,000m가 넘는 남조지아 섬의 서쪽 해안에 상륙했다. 그 곳에서 다시 세 사람이 최고봉인 파젯산의 북서쪽에 있는 1,350m가 넘는 언덕을 넘어, 곧 험한 섬을 횡단해 고래잡이기지에 도착해 조난사실을 알렸고 마침내 엘리펀트 섬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8월 30일 칠레 원양항해선인 ‘옐초’호로 구조되었다. 이 탐험은 최초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어도??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는 남극탐험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생존의 신화를 이룩했다.
기계를 이용한 탐험
이후 남극탐험은 비행기와 쇄빙선이 동원되면서 새로운 탐험시대를 열었다. 먼저 섀클튼 경의 마지막 탐험에 비행기를 가지고 참가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윌킨스(Sir George Hubert Wilkins, 1888-1958) 경이 1928년 단엽기 두 대로 남극반도 북부∼중부 일대를 탐험했다. 그 때 그는 많은 항공사진을 찍었으나 훗날 그가 찍은 남극반도일대의 항공사진은 잘못 해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런 표지 없이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인 곳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해군대령 버드(Richard Evelyn Byrd, 1888-1957)는 1929년 11월 29일 비행기로 남극점을 정복했다. 남극점이 개썰매와 걸어갔던 사람으로 정복된 다음 마침내 현대 장비인 비행기로 정복된 것이었다. 이 공로로 제독으로 승진한 버드는 1934년 메리 버드 랜드에 있는 작은 기지에서 혼자 월동하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거의 죽을 뻔 했으나 무전이 끊긴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남극의 한겨울인 8월에 그를 찾아와 그의 목숨을 구했다. 그는 그 후유증으로 4년이나 고생해야했다.
미국의 백만장자 엘스워드(Lincoln Ellsworth, 1880-1951)는 1935년 남극반도 끝에 있는 던디 섬에서 3,700km 떨어진 로스 빙붕 위의 리틀 아메리카 기지까지 비행했다. 그때 그는 비행기 연료가 떨어져 마지막 26km를 걸어서 목표에 도착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정부는 남극탐험에 관심을 가져 1946∼1947년에 하이점프 작전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남극 탐험작전을 수행했다. 버드 제독이 지휘한 이 작전에는 4,000명 이상의 사람과 잠수함과 쇄빙선을 포함한 배 13척 그리고 23대의 비행기가 동원되었다. 남극대륙의 1/4이상이 비행기로 관찰된 이 작전에서 웨델 해를 제외한 서남극-로스 해-동남극 해안 60% 이상에 걸쳐 7만장 이상의 사진이 촬영되었고 남극해안선 25%가 처음으로 관찰되었다.
1955~1958년에 걸쳐 영국이 주관한 영연방 남극 종단탐험은 인류사상 처음으로 남극대륙을 종단한 탐험이다. 당시 웨델 해 쪽에서는 영국의 비비안 훅스(Sir Vivian Ernest Fuchs, 1908-1999) 경이 남극점으로 향했고 로스 해 쪽에서는 뉴질랜드의 에드몬드 힐러리(Sir Edmund Hillary) 경이 식량과 연료를 보관하면서 남극점으로 갔다. 그들은 1958년 1월 19일 남극점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서 만났고 3월 2일 뉴질랜드 스콧기지에 도착했다. 훅스 경은 3,472km를 99일 만에 달려 인류 최초로 남극대륙에 뜻했던 남극대륙 종단이 같은 영국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탐험
요트로 남극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있다. 바로 1972년 길이 10m의 요트 아이스 버드(Ice Bird)호로 남극을 탐험한 뉴질랜드 태생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 데이빗 류이스(David Lewis)이다. 이 탐험은 시드니에서 미국 파머 기지까지 거의 9,000km를 항해했던 의지의 탐험이었다. 바람에 요트가 두 번씩이나 뒤집혀 성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고 구명정마저 없어졌다. 류이스는 1983년에는 동료 몇 사람과 남극에서 월동하면서 저체온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지만 수차례나 남극을 탐험하는 강인성을 보여주었다.
남북극을 모두 정복한 탐험도 있었다. 바로 영국사람 라눌프 핀즈(Sir Ranulph Fiennes, 1944- ) 경이 주관했던 탐험이었다. 핀즈 경 일행은 1980년 1월 서남극 핌블빙하에 상륙해 -84℃를 견디며 그 해 겨울을 넘기고 10월 28일 기지를 떠나 남극종단에 들어갔다. 그들은 엄청난 눈파도를 헤치며 전진해 12월 15일 남극점에 도착했으며 다음해 1월 16일 뉴질랜드의 스콧기지에 도착해 개인이 남극대륙을 종단했다는 기록을 세웠다. 그들은 북극점 정복에도 나서 1982년 4월 11일 북극점에 닿았으며 돌아오는 길에 얼음 위에서 99일을 보내다가 탐험선을 만났다.
지금까지 모든 남극탐험은 가장 짧은 길로 탐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 ‘국제남극종단탐험대’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길로, 남극대륙을 종단했다는 점에서 기억될 만한 탐험이었다. 프랑스, 영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사람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1989년 7월 남극반도 끝을 출발해 반도를 종단하고 12월 11일 남극점에 도착했다. 그들은 다시 남극에서 최저온이 기록된 러시아 보스토크기지를 경유해 1990년 3월 3일 러시아의 미르니 기지에 도착했다. 이 탐험대는 개 썰매로 일곱달 만에 장장 6,400km를 달려 남극탐험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남극탐험은 지금도 계속돼 둘이서 또는 혼자 남극대륙을 종단하기도 한다. 예컨대 앞에서 이야기한 핀즈경과 동료 한 사람은 1992∼1993년 남극대륙을 걸어서 종단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스키로 남극에 도전한다.
남극을 탐험했던 사람들이 기온을 재고 기념이나 증거물로 삼고자, 또는 호기심으로 이끼나 돌멩이나 화석을 모으면서 남극에 대한 연구는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남극을 제대로 관측하고 연구한 것은 1957년 7월 1일에 시작해 1958년 12월 31일에 끝낸 국제 지구물리 관측년도(IGY)부터이다. 그 때 이후 극점을 비롯하여 대륙과 도서지방에 많은 기지가 세워지게 되었고 남극의 지질, 대기, 해양, 생물, 오로라, 지자기, 지구물리, 얼음과 그 외의 다른 관심분야가 체계를 세워 관측되고 연구 자료가 수집되고 분석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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